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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20대왕 경종에대해...
    카테고리 없음 2024. 4. 17. 23:34

    왕통문제와 관련하여 소론이 노론을 숙청한 신임사화가 일어난다.


    갑술환국으로 생모가 왕비에서 빈으로 강등되었고, 숙종이 그의 생모에게 신당을 만들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죄명으로 자진하라는 비망기를 내렸다.


    정국을 주도하던 노론 측에서는 임금이 후사가 없다고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하게 하였다.


    소론의 김일경은 대리청정을 제기한 조성복은 물론 연명차자를 올린 노론 대신을 임금에 대한 불충으로 몰아 정계에서 축출하였다. 


    진하사가 청나라에서 받아온 서양의 시계 문진종이 밤과 낮, 날씨에 관계없이 시각을 추측할 수 있다고 하여 관상감에 내려 만들게 하였다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영조)로 책봉하였다.


    폐비 장희빈의 소생이라는 이유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그의 세자 책봉을 반대하였던 송시열은 사사되었다.


    1724년 즉위 4년이 되던 해 그의 건강은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였고 자리에 누운지 단 며칠 만에 급서하고 말았다.


    그는 조선의 역대 왕세자 중 30년이라는 최장 기간을 세자로 지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할 때부터 노론 대신들을 찍어누르고 조선의 마지막 전국 일제 양전사업인 경자양전을 강행해서 완성시켰다.


    그는 젊어서부터 병약했다. 기본적으로 비만이었다는 것은 실록에도 기록되어 있고 생애 내내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신경병증을 앓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종은 슬하에 자식(후사)을 두지 못해 연잉군이 그 뒤를 이었다. 


    그의 불임설이 있는데, 야사에는 희빈 장씨가 죽기 전에 아들의 성기를 꽉 붙잡고 당기는 만행을 저질러 성불구자가 됐고 병약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단 하나의 후궁도 들이지 않았고,양자를 고려하는 등의 아예 자식을 낳을 기대 자체를 하지 않았음을 볼 때 성 불구를 의심하게한다.


    왕세제 연잉군이 올린 간장게장과 단감을 먹고 탈이 나서 죽었다는 설이 조선시대부터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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